BP's : 광릉. 단종을 폐위한 세조의 능.
조선왕릉에 대해서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아주 잘 설명돼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조선왕릉
http://royaltombs.cha.go.kr/cha/idx/SubIndex.do?mn=RT
광릉은 조선 7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능이다. 광릉은 같은 산줄기에 좌우 언덕을 달리하여 왕과 왕비를 각각 따로 모시고, 능 중간 지점에 하나의 정자각을 세우는 형식인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로서, 이러한 형태의 능으로 최초로 조성되었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이 세조, 오른쪽 언덕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세조는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명을 남겼다. 이러한 세조의 유언에 따라 이전까지 석실로 되어 있던 능을 회격(灰隔)으로 바꾸어 부역 인원을 반으로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였다. 봉분 주위에 둘렀던 병풍석을 생략하면서 병풍석에 새겼던 십이지신상은 난간석의 동자석주에 옮겨 새기는 등의 상설 제도를 개혁하였다.
능침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홍살문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향로와 어로는 유실되어있는 상태이다. 본래 정자각은 세조의 능역 앞에 있었으나, 정희왕후의 능을 조성하면서 두 능의 사이로 옮겨 지은 것이다.
1468년(예종 즉위)에 세조가 수강궁 정침에서 52세로 세상을 떠나, 같은 해 주엽산 아래에 광릉을 조성하였다. 본래 이 자리는 동래정씨 정창손의 선대묘역이 있던 자리였으나, 광릉이 조성되면서 동래정씨 묘역은 다른 곳으로 이장되었다. 세조의 광릉 자리가 좋아 조선 500여 년을 세조의 후손들이 통치하였다고 하는 일부 풍수가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후 1483년(성종 14)에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윤씨가 온양 행궁에서 66세로 세상을 떠나, 같은 해에 광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위키피디아
https://ko.wikipedia.org/wiki/%EA%B4%91%EB%A6%89
남양주 무지 크다.
능이 독특한 위치로 배치돼 있다. 산줄기를 사이로 왕과 왕비가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눠져 있다.
산책로는 15분 정도면 올라 갈 수 있다.
주위에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산책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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