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s : 분황사는 선덕여왕이 자신을 나타내는 '향기로운 임금'이라고 칭하며 만든 사찰.
신라시대 황룡사와 함께 불교의 중심지였고, 규모도 컸다는데..
몽골침략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부분 유실됐다고..
지금은 분황사 중앙에 있는 모전석탑이 유명하고, 다른 곳은 휑한 느낌이다.
불국사를 보고와서 그런지 규모도 아담하게 느껴진다. 시내 가까운 곳에 있는 곳..
모전석탑은 원래 7층 또는 9층으로 예상되는데 임진왜란 때 손실돼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원래 모습이었으면 얼마나 웅장할까?
실제 분황사는 지금의 모습과 달리 화려했다고 한다.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이 있었고, 많은 양의 구리로 만든 약사여래상도 있었다고.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황룡사 9층탑이나 전란으로 유실되지 않은 것들이 남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된다.
계속 둘러보니 이 아담한 사찰의 매력이 있다.
1000원 이상을 내고 소원을 빌며 종을 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올 한해도 가족과 친구. 화목하게 지내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했음.
분황사 - 위키피디아
분황사(芬皇寺)는,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사찰이다. 선덕여왕(善德女王) 3년(634년)에 낙성된 이래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의 전성기와 함께했던, 1,400년 동안 법등(法燈)을 밝혀 온 유서 깊은 사찰이다. 송고승전(宋高僧傳)에는 왕분사(王芬寺)로 잘못적혀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의 말사로써, 현재의 규모는 약사도량(藥師道場)으로써 약사불(藥師佛)을 모신 보광전(普光殿)과 석탑, 그리고 요사채의 단촐한 규모일 뿐이지만, 신라 불교를 대표하는 고승인 자장(慈藏, 590년 ~ 658년)과 원효(元曉, 617년 ~ 686년) 등이 주석한 곳으로써 창건 당시의 사찰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오늘도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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