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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간식/공연,전시

[BP/MU] 이촌에 있는 고대유럽 - 로마이전 에트루리아

by bass007 2019. 10. 6.

BP's : 에트루리아. 

만화 마스터키튼에서 유적이 나올 때 언급되는 오래된 역사... 

그냥 고대유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회가... 

언제나 전시회는 막판에 몰려서 보게 되는데...

이번에는 무료 전시라.... 

마감 전에 볼 수 있게 됐다.

고대 유럽은 로마, 그리스만 알았는데.. 그 이전 에트루리아가 한수 위라는 것을 알게 해준 전시회.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남겨진 것으로 증명되는 것...

지금 남아있는 것보다 더 번성했던 제국들은 알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유럽 이외에 동아시아나... 남미의 고대 국가들...

더 대단한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관련기사 

로마 이전 제국 생활문화 발판 마련 
기원전 3~4세기 라치오 유물 300점 
‘죽음-삶의 연장’이란 여유와 느긋함 
무덤·유골함·공예품 등에 담겨

로마를 있게 한 ‘미지의 고대문명’ 에트루리아 - 한겨레 2019 7 22   

에트루리아 - 위키피디아 

에트루리아(Etruria)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던 옛 나라로 그 영토는 지금의 토스카나주, 라치오주, 움브리아주에 해당한다. 로마 공화정 이전에 이탈리아에 존재했던 주요 문명이다. 라틴어 문헌에는 티레니아(Tyrrhenia)라는 이름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고대 에트루리아인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고대부터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최초의 에트루리아인들이 기근을 피해 서쪽으로 항해해 온 소아시아의 서해안에서 온 리디아인이었다고 한다.(역사 제1권 94) 반면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는 에트루리아인들이 이탈리아 본토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고대 로마사 1권 25~30장) 오늘날 학계에서도 두 주장에 각각 나름의 증거가 있다.[1]

에트루리아 문명은 고대 그리스처럼 도시 국가들로 이루어졌다. 12개의 도시들이 에트루리아 연맹을 결성했다. 처음에 이들 도시들은 왕들이 통치한 듯하다. 이 중 어떤 왕조는 과두지배체제로 대체되었다.

에트루리아에서는 금속세공업과 무역이 발달했다. 이들은 엘바 섬의 철과 에트루리아의 구리를 자원으로 이용했고, 금, 은, 상아 등에도 숙련된 세공 기술이 있었다. 이들은 그리스 본토, 이집트, 레반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카르타고와 긴밀하게 무역 활동을 했다.[2]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650년 경 이탈리아 반도의 가장 유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북쪽으로 포 강 유역, 남쪽으로 라치오주까지 그 영토를 확장하였고, 남부 이탈리아의 고대 그리스 식민지와 만나게 되었다.(마그나 그라이키아) 시칠리아나 마실리아의 그리스 도시들과 무역 경쟁을 벌이면서 에트루리아는 자연스럽게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게 되었다.

로마에는 에트루리아인 왕조가 들어서기도 했으며, 그 후 100년간 로마를 지배했다. 로마는 농촌에서 거대한 도시로 성장하였다. 또 로마의 간선 도로인 거룩한 길(라틴어: Via Sacra)의 건설도 이때 시작되었다. 또 에트루리아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수입하여 로마에 자리잡게끔 했다. 또 그리스 문자에서 온 에트루리아 문자로 로마 문자가 만들어졌다.

고대 에트루리아인은 상아로 만든 주사위, 체스와 백개먼으로 놀았으며, 레슬링, 달리기, 복싱, 승마와 같은 스포츠를 즐겨보았다.

고대 에트루리아인은 음악과 춤을 좋아하였다. 그들은 수금을 이용하여 음악을 만들었다. 그들의 춤은 신에게 숭배를 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고대 에트루리아인은 계급구분에 관한 의식이 강했다. 처음에는 높은 계급이 없었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 곡예사나 노예가 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들은 3계급으로 나뉘었다. 가장 높은 계급은 귀족이나 땅을 소유하는자, 부자, 성직자들이 차지했다. 중간은 농부들과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차지했다. 가장 낮은 계급은 노예가 차지했다.

로마이전 에트루리아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대 지중해 문명의 한 축이었던 에트루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를 개최합니다.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100년경까지 이탈리아 반도 중북부 지역에 있던 고대 국가입니다.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지중해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 역사가들은 에트루리아인들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른 태곳적 사람들”이라 여겼습니다. 베일에 싸인 그들의 기원과 언어, 종교는 에트루리아인들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감탄과 매력을 자아냅니다.
로마 문화의 근간을 이루지만 아직 그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에트루리아. 이번 전시는 에트루리아의 문화를 살피며, 우리의 문화적 시야를 넓히고자 마련되었습니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약 300점의 전시품에는 에트루리아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세계관, 종교관, 사후 관념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2천여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우리 앞에 펼쳐진 에트루리아의 다양한 유물들은 죽어서도 현재의 삶이 이어지기를 바랐던 그들의 간절한 바람을 전합니다. 세련되고 신비로운 고대 유럽 문명의 하나로, 로마의 근간을 이룬 에트루리아. 이제 그 문명의 숨결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에트루리아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여전히 보석과 와인,
그리고 춤을 추기 위한 연주용 피리가 있는 삶의 즐거운 연장이었다.
황홀한 축복, 천국도 아니었고, 고통의 연옥도 아니었다.
그저 풍요로운 삶의 자연스런 연장이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생명, 삶이란 관점에서 본 것이다.

And death, to Etruscans, was a pleasant continuance of life, with jewels and wine and flutes playing for the dance. It was neither an ecstasy of bliss, a heaven, nor purgatory of torment.
It was just a natural continuance of the fulness of life. Everything was in terms of life, living.

- D.H. 로렌스의 『에트루리아 유적 기행기』 중 -

[전시 개요]
 ㅇ 전 시 명 :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ㅇ 전시기간: 2019. 7. 9.(화) ~ 2019. 10. 27.(일)
 ㅇ 전시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ㅇ 전 시  품: 신전 페디먼트, 석관, 청동상, 도기, 금제 장신구 등 300여점
 ㅇ 주      최: 국립중앙박물관
 ㅇ 협      력: 국립박물관문화재단
 ㅇ 대여기관: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등
 ㅇ 현지협력: 이탈리아 Expona/CP

입장료 

성인 9000원 어린이 5000원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오늘도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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