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s : 정릉인과 함께 정릉의 자랑 정릉을 산책.
정릉은 이성계에게 물을 떠준(버드나무잎을 올려서 천천히 마시도록 한) 두 번째 왕비 신덕고황후 강씨의 능이다.
정릉은 버스 노선도에서만 봤는데, 처음으로 가봤다.
듣고보니, 정릉 근처의 어린이들은 여기로 소풍 많이 왔다고.
우리 동네 어린이들이 서울대공원으로 소풍 많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어디에 사는지가 어린이의 정서 함양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데..
아마도 어느 초등학교 교무회의에서는
"이번에 봄소풍은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해주게 하기 위해서 여수 어때요?"
라고 하면
"에이. 멀리가면 귀찮아요. 애들 관리하기도 힘들고. 정 가고 싶으면 선생님이 한번 맡아서 해보시던가요~"
라는 답이 나와서..
"그럼 그냥 가까운 정릉으로 가지요"
뭐 이런식이 아닐까?
아무튼 정릉은 처음이었는데... 아주 고즈넉하니 좋았다.
북한산이랑 이어져서 산책하기도 딱 좋음.
미니 도서관도 있어서 어린이와 같이 갈만 함.
입장료는 1000원으로 성북구민은 50% 할인. 연간 회원권도 있다.
성북구민이라도 신분증 없으면 할인 못 받음.
정릉貞陵(태조비 신덕황후)
위치 :
서울 성북구 아리랑로 19길 116
능의 형식 :
단릉
능의 조성 :
1409년(태종 9), 1669년(현종 10)
정릉은 조선 1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고황후 강씨의 능이다.
단릉의 형식으로, 능침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를 배치하였다.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만이 조성당시의 것이며 나머지 석물은 현종 대에 다시 조성하였다. 장명등은 고려시대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
능침아래에는 홍살문, 정자각, 수복방, 수라간, 비각이 있고, 일반 조선왕릉과 달리 직선축이 아닌 자연 지형에 맞추어 절선축으로 조성되었다. 진입공간에 금천교의 모습은 우리나라 자연형 석교의 조형기술을 볼 수 있으며 재실 양 옆으로 서 있는 느티나무의 보호수도 살펴 볼만한 가치 있는 역사경관이다.
신덕고황후 강씨(재세 : ?년 ~ 1396년 음력 8월 13일)는 본관이 곡산인 상산부원군 강윤성과 진산부부인 강씨의 딸로 태어났다. 강씨집안은 고려의 권문세가로서 이성계의 권력 형성과 조선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전해진다. 향처(鄕妻, 고향에서 결혼한 부인)와 경처(京妻, 서울에서 결혼한 부인)를 두는 고려의 풍습에 따라 신덕고황후는 태조의 경처가 되어 2남(무안대군 방번, 의안대군 방석) 1녀(경순공주)를 낳았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조의 향처 한씨가 이미 조선 개국 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신덕고황후가 조선 최초로 왕비(현비)로 책봉되었다. 태조 재위 시절 자신의 둘째아들(의안대군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하는 등 지지기반을 닦았으나 이는 후에 왕자의 난의 씨앗이 되었다. 1396년(태조 5)에 이득분의 사저에서 세상을 떠났고, 1899년(광무 3)에 신덕고황후로 추존되었다.
태조는 신덕고황후를 극진히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그들이 처음 만나 사랑을 싹틔우게 된 계기에 대한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의 어느 날, 말을 달리며 사냥을 하다가 목이 매우 말라 우물을 찾았다고 한다. 마침 우물가에 있던 아리따운 그 고을의 처자에게 물을 청하였는데, 그녀는 바가지에 물을 뜨더니 버들잎을 띄워 그에게 건네주었다.
태조가 버들잎을 띄운 이유를 묻자 처자는 “갈증이 심하여 급히 물을 마시다 체하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그리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 대답을 들은 태조는 그녀의 갸륵한 마음 씀씀이에 반하여 부인으로 맞아들이게 되었다.
정릉 맷돌체조가 궁금해졌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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