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s : 창덕궁 후원은 매번 와보고 싶었지만, 표를 구할 수 없어서 못 온 곳.
30분마다 인원 수 한정으로 왕이 공부하던 곳, 사색을 하던 곳을 둘러볼 수 있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왕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문화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성균관대 뒤쪽까지 이어져 있기 때문에
관람 시간은 1시간 30분이고 3km가량을 걷는다.
너무 긴 것 아닌가? 생각됐는데
해설사님께서 너무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셔서 금방 시간이 갔다.
예매는 온라인 또는 현장에서 가능.
후원은 조선왕조 역사 속 왕들이 생활을 했던 왕실정원으로 그 아름다움이 신비로울 정도다.
성정각 일원에서 창경궁과 경계를 이루는 담을 따라 올라가면 왕실정원의 초입부인 부용지에 이른다.
부용정(芙蓉亭)-芙蓉 : 연꽃
휴식과 학문적 용도로 쓰인 아름다운 건물들
이곳은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300평(약 1000㎡) 넓이의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을 지었다.
주합루 일원의 규장각(奎章閣)과 서향각(書香閣) 등은 왕실 도서관 용도로 쓰였고, 영화당(暎花堂)에서는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이다.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부용정은 연못에 피어 있는 한송이 꽃의 형상을 하고 있다.
행사가 치러지던 영화당은 연못에 면해 있으며, 학문을 연마하던 주합루는 높은 곳에서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나하나의 건물도 각각 특색 있고 아름답지만, 서로 어우러지면서 풍경이 되는 절묘한 경관이다.
현재는 어수문을 중심으로 생울타리인 취병을 재현하여 지역을 구분하고 있다.
불로문(不老門), 애련지(愛蓮池)-不老 :늙지 않는다, 愛蓮 : 연꽃을 사랑한다
불로문(不老門), 애련지군자의 성품을 닮은 경치
1692년(숙종 18)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섬은 없고 정자는 연못 북쪽 끝에 걸쳐 있다.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못은 애련지가 되었다. 숙종은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 라고 새
정자의 이름을 지은 까닭을 밝혀 놓았다. 애련지 서쪽 연경당 사이에 또 하나의 연못이 있는데, 원래 이곳에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1827년(순조 27) 효명세자는 애련지 남쪽에 의두합을 비롯한 몇 개의 건물을 짓고 담장을 쌓았다. 현재‘기오헌(奇傲軒)’이라는 현판이 붙은 의두합은 8칸 의 단출한 서재로, 단청도 없는 매우 소박한 건물이다. 바로 옆의 운경거(韻磬居)로 추정되는 건물은 궐 안에서 가장 작은 한 칸 반짜리 건물이다.
연경당(演慶堂)과 선향재(善香齋)- 演慶 : 경사(慶事)가 널리 퍼진다, 善香 : 좋은 향기가 서린다
연경당(演慶堂)과 선향재(善香齋)사대부 살림집을 본뜬 조선 후기 접견실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8년(순조 28)경에 창건했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는
연결되어있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규모가 제한된 데 비해, 연경당은 120여 칸이어서 차이가 난다. 서재인 선향재(善香齋)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후원 높은 곳에
있는 농수정(濃繡亭)은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같이 날렵한 모습이다. 안채 뒤편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반빗간이 있다. 고종 이후 연경당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존덕정(尊德亭)과 폄우사 - 어리석은 자에게 돌침을 놓아 깨우쳐 경계한다‘는 뜻으로, 스스로를 권면하는 말
불로문(不老門), 애련지다양한 형태의 정자들
이 일대는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모습은 네모나거나 둥근 3개의 작은 연못들이 있었는데, 1900년대 이후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관람지라고 부른다. 연못을 중심으로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인 존덕정,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觀纜亭), 서쪽 언덕 위에
위치한 길쭉한 맞배지붕의 폄우사(砭愚榭), 관람정
맞은편의 승재정(勝在亭) 등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을 세웠다. 폄우사는 원래 부속채가 딸린 ‘ㄱ’자 모양이었으나 지금은 부속채가 없어져 단출한
모습이고, 숲 속에 자리 잡은 승재정은 사모지붕의 날렵한 모습이다. 1644년(인조 22)에 세워진 존덕정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관람정과 승재정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옥류천(玉流川)- 玉流 : 옥같이 맑게 흐르는 시냇물
옥류천옥류천다양한 각도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
옥류천은 후원 북쪽 가장 깊은 골짜기에 흐른다. 1636년(인조 14)에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내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폭포를 만들었으며, 곡선형의 수로를 따라서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벌이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세 글자는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이다.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농산정(籠山亭), 취한정(翠寒亭), 청의정(淸漪亭) 등 작은 규모의 정자를 곳곳에 세워,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는 정원을 이루었다.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청의정(淸漪亭)은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이다. <동궐도>에는 16채의 초가가 보이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청의정만 궁궐 안의 유일한 초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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