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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간식/Books

[BP/BOOKS] 열하일기(熱河日記 1780) - 조선시대 실학자 박지원

by bass007 2020. 10. 12.

BP's : 익숙한데 실제로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 있다. 

뭔지는 대충 아는데, 실제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는 .

그런 것 중에 하나가 국사시간에 배웠던 것들. 

인물, 역사, 고전 등...

코로나19 때문에 소일거리가 없어서 그런 것들에 관심이 간다. 

그런데 그 것들을 실제로 접하게 되면 내가 인식하고 있던 것들과 많이 다르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연히 보게된 조선시대 실학자 박지원의 열하일기. 

열하일기가 뭔지는 알고 있었지만 읽어본적은 처음이다. 

막상 읽어보니 1700년대, 조선시대의 해외여행이라는 것은 이렇구나 라고 알 수 있었고. 

기행문이다보니 지금 읽어도 옛날 것이라는 생각이 안들었다. 

그 글 속에 묘사된 풍경, 인물 등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그리고 박지원은 애플 스티브 잡스나 테슬라 엘런 머스크 못지 않은 세기의 천재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열하(熱河)는 현재 중국의 청더시(승덕시 承德市)다. 

청나라 황제 강희제가 여름에 휴식을 치하면서 공무를 봤던 별장이 있다. 

사실 열하일기는 열하 기행문 뿐 아니라 의주에서 삼양 북견을 거쳐 열하를 보고 돌아오면서 본 것에 대한 내용이다. 

그래서 당시 중국 사람들, 문화, 조선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지금으로 말하면 자비를 내고 후원자로서 따라가는 양반,  보디가드 같은 사람도 있다. 

300년 전 해외에 가봤다는 것은 현재로 따지면 대기권에 가보거나 세계일주를 한 정도가 아닐까? 

그 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초반부는 정말 기행문을 읽는 느낌이라 아주 몰입해서 봤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열하로 가는 일행이 된 기분이었다. 

아 그리고 그 때도.. 뭐 하자면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러면 망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고위 공무원, 당파 세력들이 많았던 것 같다. 

대상이 중국에서 미국으로만 바뀌었을 뿐. 

오래된 이야기지만 일부 상황은 현재로 치환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중국 황제의 여름별장, 피서산장(避暑山莊)을 아시나요? - 이단비와 함께 하는 중국 여행

열하(청더시) 여행 블로그 포스팅 LHS - 오래됨의 미학 

위키피디아 - 박지원 

조선시대 실학자 박지원(朴趾源, 1737년 3월 5일(음력 2월 5일) 조선 한성부 출생 ~ 1805년 12월 10일(음력 10월 20일) 조선 한성부에서 별세.)은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이자 사상가, 외교관, 소설가이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고, 시호는 문도(文度)이다.[1][2][3][4] 1765년 집안 어른들의 기대때문에 과거에 응시한 그는 일부러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과거를 피했으며 학문 연구와 저술에만 몰두하였다. 저서로는 북학파 실학자 연암의 철학이 담긴 《열하일기》, 단편소설인 《허생전》이 있다. 그는 청나라의 신문물에 관심을 두었다. 정조대왕이 즉위한 후에 여러번이나 학문과 문장력을 존중받아서 추천받았지만 고사하다가, 노론 명문가인 반남 박씨 집안의 거듭된 권고로 1786년 문음으로 출사하게 된다.

1786년 음서로 선공감 감역이 되어 1789년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 1791년 한성부판관, 1792년 안의현감(安義縣監), 1797년 면천군수(沔川郡守), 1800년 양양부사를 역임했다. 안의현감 재직 중 북경여행을 다녀왔으며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실험적 작업을 시도하였으며, 면천군수 재직 중 《과농소초 (課農小抄)》,《한민명전의 (限民名田議)》, 《안설 (按說)》 등의 저서를 남겼다. 사후에도 그의 문집과 저서는 간행되지 못하다가 1910년(융희 4년)에 가서야 간행되었다. 증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었다.

당색으로는 노론이었으나, 노론의 한 분파인 북학파(北學派)를 세워 그 영수가 되었다. 홍대용, 박제가 등과 함께 청나라의 우수한 점을 배워서 민중들의 삶을 위해야 한다면서, 상업과 공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상주의를 주장하였다. 실례로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청나라를 본받아서 수레를 사용하고 도로를 닦아서 생필품들을 널리 사고팔도록 해야, 민중들이 생필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북학파라고 한다. 그의 제자로는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이 있다.

위키피디아 열하일기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조선 정조 때의 북학파인 박지원이 44세 때인 1780년(정조 4년)에 삼종형(8촌 형)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萬壽節, 칠순 잔치) 사절로 북경(당시의 연경)에 갈 때 따라가서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견문기이다.

연민 이가원이 소장하여 오다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 및 서화가들이 남긴 서적 서화골동품등 문화재급 유품 3만여점을 1986년 12월 22일 기증한 자료 중에 하나인데 단국대학교 연민문고에 친필본이 소장되어 있다

YES24 : 

http://www.yes24.com/Product/Goods/56320155?OzSrank=12

중국 CNTV의 청더시 소개 영상.

고화질에 드론으로 시원하게 찍어서 볼만하다.

청서시 홍보 영상 산간 휴양지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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