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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Journey/국내여행기

[BP/여주] 강 옆에 있는 절 - 신륵사(神勒寺)

by bass007 2019. 6. 24.

BP's : 여주를 대표하는 곳 중 하나인 신륵사. 

절은 대부분 산 속에 있는데, 

여기는 강 옆에 있다. 

그래서, 절에서 바라보는 강의 모습이 아주 아름답다. 

보물과 경기도문화제들이 있는데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등 볼만한 것들이 있다. 

입장료가 있는데, 이게 받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나올 때 보니까 받으시는 분들이 퇴근하신... 

높지 않은 곳에 있어서 일단 둘어보기 아주 편하다. 

이 날 날씨도 좋아서.... 구경 제대로 했음. 

신륵사 위키피디아 

신륵사(神勒寺)는 경기도 여주시 봉미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서 신라 시대 때 창건되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절은 산 속에 짓는 경우가 많은데 반하여 신륵사는 남한강이 보이는 강변에 세워져 있다.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때 처음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연못을 메우고 창건했다. "신륵(神勒)"이라는 절 이름의 유래로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는 신이한 미륵(彌勒)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신륵사의 륵(勒)자는 말을 다스린다는 뜻이 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두 번째는 고려 우왕 때 왕사 나옹(王寺懶翁)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용마를 신비한 굴레를 씌워 얌전하게 다스렸다는 이야기이다.

세 번째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 사나운 용마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자 승려 인당(印塘)이 나타나 고삐를 잡아채자 순해졌다는 이야기이다.[2] 설화에 나타난 신력과 굴레에서 신륵(神勒)이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신륵사에서는 고려의 고승인 나옹이 머물러 절이 크게 확장되었다. 나옹은 1376년(우왕 2)에 신륵사에서 사망하여[1] 이색이 이곳에 대장각을 짓고 《대장경》을 봉안했다. 지금은 나옹과 나옹의 제자인 무학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3] 1379년(우왕 5)에 각신(覺信)·각주(覺珠) 등이 이 절을 크게 짓고, 나옹의 부도(浮屠)를 세웠다.

조선 시대에는 1440년(세종 22)에 중수하였으며, 1473년(성종 4)에 세종의 능인 영릉을 여주로 이장하면서 영릉의 원찰로 신륵사가 지정되었다.[1] 이때 국가에서 확장하여 크게 중수되어 사찰명은 보은사(報恩寺)로 바뀌었다.[1] 1671년(현종 12)에는 계헌(戒軒),[1] 1702년(숙종 28)에는 위학(偉學) · 천심(天心) 등이 중수하였다.

원찰로서의 의미가 약해진 뒤 신륵사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신륵사 홈페이지  

구글맵 

 

오늘도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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