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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WU] 서정주 시인 생가...

by bass007 2012. 4. 21.



BP's : 동네에 서정주 시인의 집이 있다. 내 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어서 신기할 것도 없지만 오래간만에 그 앞을 지나가다가 문이 잠긴 것을 보고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서정주 시인의 시를 배웠는데 바로 그 분이 학교 옆에 사신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당시만해도 주위에는 집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시인이 사는 집은 어린이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이 앞을 지날 때는 한참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었는데, 정작 서정주 시인을 본 것은 어릴 때 지나가다가 몇 번 봤을 정도. 하지만 이미 할아버지 셨고, 보기에도 거동이 불편해 보이셨다. 집 주위를 산책하거나 그러는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나중에 크면서 서정주 시인의 친일행적에 대해서 알게되어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기사를 찾아보니 김소월의 자식들을 아껴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것 같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0149522


이 문패는 내가 어릴 때에도 이렇게 있었다.


관림을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평일에도 닫혀 있었는데.


하....예전에는 여기가 영등포구였고, 사당동이었구나.....


사실 밖에서 보는 이 집의 내부 모습은 예전에도 이런 분위기였다. 사람이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아마 늙은 시인은 칩거하면서 하루종일 책을 읽고 생각을 했을 것 같다.


http://ko.wikipedia.org/wiki/%EC%84%9C%EC%A0%95%EC%A3%BC

서정주(徐廷柱, 1915년 5월 18일 ~ 2000년 12월 24일)는 토속적, 불교적 내용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쓴 한국의 이른바 생명파 시인이다. 호는 미당(未堂), 궁발(窮髮)이다.

일제강점기 조선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출생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3년 겨울, 개운사 대원암에서 영호당 박한영 스님 밑에서 수학했다. 1936년 경성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36년김광균·김동리·오장환 등과 함께 잡지 《시인부락》을 창간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전시체제때 , 일본식 이름: 達城靜雄으로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 강점기 말기에 태평양 전쟁을 찬양해 당시, 조선인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시와 글을 통해 친일 행위를 하였다. 훗날 그는 자서전에서 그의 친일 행위에 대해여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 줄 몰랐다.”라는 고백을 한 바 있다.[1]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되었다. 2002년 공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들어 있으며, 당시 총 11편의 친일 작품명이 공개되었다.[2]

해방 후에는 당시 문학계를 풍미하던 좌익 계열의 문학적 흐름에 반대하여, 이른바 순수 문학의 기치를 내걸고 우익 성향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여 좌익 계열의 조선문학가동맹과 대결하였다. 서라벌예술대학동국대학교 등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역임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고, 다수의 문학 단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줄곧 한국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일제 강점기뿐만 아니라, 군부 독재와 유신독재 치하에서의 처신 등으로 시인으로서의 자질과 문학적 명성과는 별도로 그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고택이 남아 있으나 폐가로 방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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