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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Journey/국내여행기

[BP/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by bass007 2021. 7. 12.

BP's : 영주가 어디있는지 잘 모른다. 

경상도 어디쯤인데, 윗쪽인가? 아니면 아래쪽인가? 

위치는 잘 모르지만 한우고기 맛집이 있고 책으로도 유명한 부석사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석사에 가보기로. 

처음 가는 곳이라 어떤 느낌인지 잘 몰랐는데, 사람도 적고 고즈넉해서 사찰의 멋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부석사라는 이름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떠 있는 돌이 있다고 해서 부석사라고. 

가보면 무량수전 옆에 아주 큰 돌이 떠 있다. 신기하기도 하지만 

이 돌을 보기전까지 부석사라는 이름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다가 돌을 보는 순간 사찰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알게되어서 깜짝 놀랐다. 

배흘림 기둥은 윗쪽과 아래쪽은 얇고 중간은 굵게 만들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사찰이 숲 속에 있어서 단풍이 들어도 아주 멋질 것 같다.  


부석사 소개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6년(676) 해동(海東) 화엄종(華嚴宗)의 종조(宗祖)인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왕명(王命)으로 창건(創建)한 화엄종의 수사찰(首寺刹)이다. 대사가 당(唐)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高宗)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의 도리(道理)로 국론(國論)을 통일(統一)하여 내외(內外)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절을 창건하였으며 우리나라 화엄사상(華嚴思想)의 발원지가 되었다. 부석

사라 이름하게 됨은 불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한데서 연유하였다 한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善達寺) 혹은 흥교사(興敎寺)라 불리웠다. 1916년 해체보수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고려(高麗)초기에 무량수전(無量壽殿)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 (恭愍王) 7년 (1358)적의 병화(兵火)를 당하여 우왕(禑王) 2년(1376)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 3년 (1377) 조사당(祖師堂)이 재건되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석조기단 등이 있고, 고려시대유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조사당(국보제19호),소조여래좌상(국보제45호),조사당벽화(국보제46호), 고려각판(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특히,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 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여래좌상은 국내에 전래하는 최고의소상(塑像)이다.무량수전서쪽에 있는 우물은 의상대사의 호법룡(護法龍)이 살았다는 우물이라 전한다.

* 문화재 - 무량수전(국보 제18호), 무량수전앞 석등(국보 제17호), 조사당(국보 제19호),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국보46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제255호), 고려각판(보물 제735호)

부석사

주소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57

전화 : 054-633-3464

부석사 홈페이지 

추천 : ★★★★☆ 고풍스러운 사찰의 모습. 새로 만든 건물보다 예전 건물이 더 멋스럽다. 

다음 플레이스 : 3.9 / 5 

네이버 플레이스 : 4.45 / 5 

구글맵 : 5 / 5 

 

영주의 유명 떡볶이 랜떡으로. 

오늘도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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