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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Journey/국내여행기

[BP/국내] 실망한 운림산방 - 기대이상 진도역사관

by bass007 2019. 7. 20.

BP's : 진도 관광지 중 하나인 운림산방, 그리고 진도역사관을 방문. 

진도역사관은 운림산방 안에 있다. 

입장료는 2000원. 

조선 말기 화가 허련이 기거하면 작품활동을 했던 곳으로. 정원이라고 생각하면 됨. 

깔끔하게 잘 만들어 놨는데, 관광객들이 많아서 시끄러웠음.

그리고, 여기 뭔가... 세심함이 떨어진다. 

한옥 곳곳에 양식 전등이 있는가 하면.. 아무튼.. 멀리서 보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 같다. 

운림산방 안에 진도역사관이 있는데. 여기만 방문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여기는 의외로 괜찮았음. 

삼별초가 여기까지 내려와서 항쟁을 했는지 몰랐고,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을 했을 때 사용했던 무기들도 전시

디오라마로 되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운림산방 가는 곳에 왕온의 묘가 있다. 

왕온은 고려시대 왕족인데, 몽골에 굴복하지 않고 싸웠던 삼별초가 왕으로 추대한 인물. 

그러다가 결국은 몽골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만약 그 사건이 다르게 흘러갔으면 수도가 진도나 목포가 되지 않았을까?

모르던 부분이었는데 역사는 알수록 재미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못갔는데 삼별초가 몽골과 싸우기 위해서 만든

용장성이라는석성이 있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특이하게 생겼는데, 다음에 진도에 오면 여기를 가보고 싶다. 

운림산방 -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운림산방은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남화(南畵)의 대가이던 소치(小癡)허련(許鍊)이 만년(晩年)에 기거하며 작품을 제작하였던 곳으로, 사랑채인 화실의 당호(堂號)이다. 허련이 49세 때인 1857년(철종 8)에 귀향하여 건립한 것이다.
허련은 시(詩), 서(書), 화(畵)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칭송되었는데, 20대에 대흥사(大興寺)초의선사(草衣禪師)와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워 남화의 대가가 되었다. 특히 헌종의 총애를 받아 임금의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으며, 왕실 소장의 고서화(古書畵)를 평하기도 하였다. 허련은 고부 현감(古阜縣監)을 거쳐 무과에 합격하고 관직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대표작으로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 「완당선생해천일립상(阮堂先生海天一笠像)」 등이 있고, 『몽연록(夢宴錄)』 등의 저서가 있다.

왕온의 묘 - 국가 문화유산 포탈

왕온은 원종 11년(1270)에 고려와 중국 원나라 사이의 전쟁이 끝나고 강화로 피난하였던 왕실이 개경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대하던 삼별초의 배중손·노영희 등에 의하여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고려 원종 12년(1271)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에 삼별초가 크게 패하자 아들 환(桓)과 여·몽 연합군의 지휘자 홍다구(洪茶丘)에게 살해되었다. 

김용규가 지은 진도군 읍지『옥주지』에 왕온의 기록이 나오며,『진도군지』에 의하면 왕온의 묘는 왕분치(王墳峙)라 한다고 한다.

왕온 무덤은 흙으로 높게 쌓은 긴 타원형의 모양이며, 봉토 주위에는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돌을 둘러 쌓았다.

진도용장성(珍島龍藏城)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있는 고려시대 삼별초가 새로운 거점으로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축조한 성곽.   산성. 사적.

 

오늘도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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