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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간식/Books

[BP/BOOK] 담론 - 신영복

by bass007 2015. 10. 10.


BP's : 대학생 때 한번쯤 선물 했거나 받아봤을만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님의 책 '담론' 

개량한복같은 느낌의 이 책은 신영복님이 성공회대에서 진행한 강의 내용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포함된 내용, 보충된 내용이다. 


처음에는 딱딱하지만 감옥에서 겪은 이야기들 만난 사람들 이야기들은 소설을 읽는 듯하다.

육사 출신이었는데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 20일간 수감된 그 인생 자체가 소설같다.

처음처럼 소주의 글씨를 써서 받으신 1억원을 성공회대에 기부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고, 정보와 사람이 제한된 곳에서 책과 사람들을 통해서 쌓여진 지식이 다른 분들과는 다른 색이 있다.


담담하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 책.


추천 : ★★★


p24 

우리의 사고는 언어로 구성돼 있습니다. 

언어라는 그릇은 지극히 왜소합니다. 작은 컵으로 바다를 뜨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컵으로 바닷물을 뜨면 그것이 바닷물이기는 하지만 이미 바다가 아닙니다. 


p72

시각을 자기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뒤에 세우며, 자기의 존재를 상대화하여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절제는 자기를 작게 가지는 것입니다. 주장을 자제하고, 

욕망을 자제하고, 매사에 지나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딪힐 일이 없습니다. 미완성은 목표보다는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게 합니다. 

완성이 없다면 남는 것은 과정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p74 

우리는 사람을 개인으로, 심지어 하나의 숫자로 상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인들은 고암 선생의 경우처럼 '뉘 집 큰아들'로 생각합니다. 

사람을 관계 속에 놓습니다. 이러한 노인들의 정서가 '주역'의 관례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p79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p107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는 살려주고, 양으로 바꾸라고 했던 것.  

소를 양으로 바꾼 이유는 양은 보지 못했고 소는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맹자의 해석입니다.

본 것과 못 본것의 엄청난 차이에 관한 것입니다. 생사가 갈리는 차이입니다. 본다는 것은 만남입니다. 

보고 만나고 서로 아는 이를테면 관계가 있는 것과 관계 없는 것의 엄청난 차이입니다. 


p135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당당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과 반대로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비굴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오만한 사람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습니다. 

다른 조합은 없습니다. 


p139 

기계라는 것은 노동 절약적인 기술을 구현하는 체계입니다. 기계는 수고를 덜어주고 시간을 단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좀 더 쉽게 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힘 들이지 않고 빨리하려고 하는 기심이 생기면 순수하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용두레라는 기계를 몰라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장자의 반기계론입니다. 


p153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의 생각에 갇혀서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다른 것들을 판단합니다. 한 개인이 갇혀 있는 문맥 그리고 한 사회가 갇혀 있는 문맥을 깨닫는다는 것은 어쩌면 당대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p191 

간디의 나라를 망치는 7가지.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업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경제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앙 


p209 

나는 같은 추억이라고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크기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217 

권력 집단 간의 상생과 상극을 생리로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p219 

우리의 삶은 수많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를 만나는 곳은 언제나 현재의 길목이기 때문이며, 과거의 현제에 대한 위력은 현재가 재구성하는 과거의 의미에 의하여 제한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p229 

나도 저 사람과 똑같은 부모를 만나서 그런 인생을 겪어 왔다면 지금 똑같은 죄명과 형기를 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p238 

나의 18번 핑계는 "나는 무기수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종교를 하나 가질 생각이어서 여러 종교 집회에 부지런히 참석하려고 한다"

한 젊은 친구는 "넌 가톨릭이잖아? 왜 기독교 집회에 가려고 그래?" 그 친구 대꾸가 걸작입니다. "요새 천주교에 회의가 생겨서요" 


p239 

자기 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됩니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는  옆 사람만큼의 변화밖에 이룰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p252 

재소자들의 인생 행로가 나름대로 한결같지 않기도 합니다만 한마디로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주인공이되 비극의 주인공. 


p258 

노인들은 사람만 보는 법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처지를 함께 봅니다. 

사람을 그 처지와 떼어서 어떤 순수한 개인으로 보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 보는 눈을 갖기까지 수많은 만기자를 보내고 다시 맞이하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p276 

곤히 잠들어 있는 가슴에서 눈 부릅뜨고 있는 문신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슬픈 그림입니다. 


p278 

제3의 입장 가치중립의 객관적 입장을 내세우는 저널리즘은 대상과 관계를 가진 일체의 입장을 불순하고 편협한 것이라고 폄하합니다. 막상 언론은 자신은 스스로 권력이 되어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조금도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객관은 뒤집으면 관객이 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구경꾼이 되게 합니다. 


p284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을 훨씬 뛰어넘는 곳에 있습니다. 서로를 따뜻하게 해 주는 관계, 깨닫게 해 주고 키워 주는 관계가 최고의 관계입니다. 입장을 경제적 계급의 의미로 읽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포획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입니다. 


p293 

자본은 나누지 않습니다. 자본은 본질적으로 자기 증식하는 가치입니다. 자본축적이 자본의 운동법칙입니다. 


p320 

글씨도 사람과 같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나름 산전수전을 겪어왔습니다. 글씨 보는 안목은 그렇지 못할지 모르지만 사람을 보는 안목은 상당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목구비나 언행이 반듯하고 패션감각이 뛰어난 그런 사람이 아마 좋아 보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쯤은 생각이 상당히 달라졌으리라고 봅니다. 

어리숙하고 어눌하더라고 어딘가 진정성이 있는 점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을 것입니다. 글씨도 같습니다. 

환동. 어린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자기를 드러내려는 작위가 개입되면 그 격이 떨어집니다. 

인위적인 것은 글자 그대로 위입니다. 거짓입니다. 


p321

명필은 오래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오래 사는 것만큼 세상을 달관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p335 

현대 미국을 미국의 역사와 함께 읽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현대 유럽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와 함께 읽는 일잉ㅂ니다. 

대상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반대의 것과 대비해야 합니다. 


p358 

가난의 고통은 춥고 배고픈 것이 아닙니다. 빵과 버터를 구입할 수 없기 때문에 겪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것보다는 지금까지 다니던 골목길을 우회할 수 밖에 없는 고통이 더 크다고 합니다.

이제는 다른 가게에서 빵과 버터를 구입라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그 가게 아주머니를 볼 면목이 없어서 우회할 수밖에 없는 한 청년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인간관계의 상실이 주는 아픔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압도적인 부분이 인간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관계야말로 궁극적 존재성입니다. 

자신을 개인적 존재로 인식하는 사고야말로 근대성의 가장 어두운 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p371 

최소한 부부와 1남1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이 지급되어야 합니다. 자녀를 하나만 두는 경우가 많아 노동력의 사회적 재생산 구조가 무너집니다. 우리의 임금 수준은 인간을 원상태로 돌려놓지 않고 있습니다. 

자연에 대해서도 수탈적이고 인간에 대해서도 수탈적입니다. 결혼을 포기한 사람들을 자살률 통계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일종의 유보된 사회적 자살이라 할 수 있습니다. 


p382 

고려 말에 이르면 강과 산을 경계로 대농장이 등장합니다. 

호강들의 토지 침탈이 극에 달합니다. 견딜 수 없는 농민들은 농노나 전호로 전락합니다. 

호강과 소작인밖에 존재하지 않는 극심한 양극화가 일어납니다. 중소 제지지주와 자작농이 살아남지 못합니다. 


p403 

해고와 법정관리를 통해 경제를 살린다는 것이 과연 경제의 근본적 개념과 일치하는 것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경제를 살리는 이유는 사람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개념 자체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을 진리 방식의 대응이라고 합니다. 물리와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p415 

나는 나의 정체성이란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들의 집합이하고 생각합니다. 만난 사람과 겪은 일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과 일들로부터 격리된 나만의 정체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관계다'를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독방은 내게 최고의 철학 교실이었습니다. 


p425 

무기수인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라고 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습니다. 햇볕이 죽지 않은 이유였다면, 깨달음과 공부는 살아가는 이유였습니다. 

여러분의 여정에 햇볕과 함께 끊임없는 성찰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p426 

독버섯은 사람들의 식탁의 논리입니다. 버섯을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합니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이유를 출이면 자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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