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is Journey/해외여행기

[BP/해외여행기/유럽/헝가리] 밤이 더 멋진....헝가리 부다페스트

by bass007 2012. 12. 10.



BP's : 기내식은 역시 라면이 최고 인 것 같다. 
이전에는 유럽과 미국 모두 그냥 외국이었는데, 이제는 유럽과 미국의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미국은 미국대로, 유럽은 유럽대로...아기자기한 면은 확실히 유럽이 좋고, 오래된 건축물들, 역사적인 사건들이 결부되어 있으니 더 멋져 보인다. 

 헝가리는 처음 가보는 곳이라서 색다른 느낌이었다. 부다페스트와 주변 도시만 가봤지만 다른 곳이랑 또 다른 느낌이다. 유럽은 다 비슷비슷한 것 같은데 각 나라마다 차이가 꽤 크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이 비슷해보이지만 다른 것처럼...

지나고나면 가장 인상적인 것만 기억에 남는다.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에 갔는지 전부 기억속에 묻히고, 꿈이랑 섞이고, 잊어 버리고....그런데 다뉴브강의 야경만은 머릿속에 남아 있다. 너무 아름다워서 깜짝 놀랄 정도였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부다페스트(Budapest 부더페슈트[*] 문화어: 부다뻬슈뜨)는 헝가리수도이자 정치·산업· 상업· 교통·문화의 중심지이다. 인구는 180만을 상회하는데 1980년대 중반의 207만보다는 낮은 수치이다. 현재 중유럽 최대의 도시이다. 1873년도나우 강 서편의 부더(Buda)와 오부더(Óbuda), 동편의 페슈트(Pest)가 합쳐져 오늘날의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따라서, 부다와 페스트의 두 지역으로 대별된다. 부더와 페스트는 전혀 다르다고 해도 좋을 만큼 서로 경치가 다르다. 역사적 전통이 남아 있는 부다의 사적들과 장려한 의사당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1956년 헝가리 혁명으로도 유명하다.[1] 부다페스트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록되어 있다. 도시 중심에 도나우강이 흐르고 있어 "도나우의 진주", ""도나우의 장미"라고 불린다. 구릉지대인 부더는 기복이 심하고 녹음이 우거져 있다. 도나우 강과 이어지는 언덕에는 변화의 역사를 겪어온 왕궁이 장엄하게 서있고, 서쪽에는 야노슈 산이 우뚝 서있다. 그 산자락에 한적한 주택가가 펼쳐지며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2] 양안의 지구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다리가 세체니 다리이다. 북위 47도29분57초, 동경19도2분38초에 위치한다.

부다페스트의 기록된 역사는 서기 89년경에 건설된 로마 제국의 아쿠인쿰(Aquincum) 성에서 시작된다. 이 성은 훗날의 오부더의 터에 가까운 곳에 자리잡았던 켈트족의 거주지역에 세워졌으며 106년부터 4세기말까지는 로마 제국의 저(低) 판노니아(Lower Pannonia) 주의 주도였다. 훗날의 페슈트 자리에는 '아쿠인쿰 반대편'의 뜻인 콘트라 아쿠인쿰(Contra Aquincum) (또는 트란스 아쿠인쿰 Trans Aquincum)이 세워졌다.

900년경 이 지역에는 오늘날 헝가리인들의 조상인 마자르(Magyar)인들이 아르파드의 인솔하에 들어왔다. 이들은 판노니아와 도시를 점령하고, 1세기 후 헝가리 왕국을 세웠다. 이때 이미 중요한 성이었던 페슈트는 1241년 몽골제국바투가 이끄는 정서군(征西軍)의 침략을 받았다. 벨라 4세의 통치하에, 곧 피해를 복구하였다. 그러나, 1247년부터 왕궁 소재지였던 부더가 페슈트를 대체하여 헝가리의 수도가 되었다.(1361년)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 대부분을 정복하면서 수도의 자리를 잃게 된 이들 도시의 성장이 지체되었다. 페슈트는 모하치 전투에 의해 헝가리 왕국이 거의 붕괴된 1526년에 오스만제국에 의해 침략당했다. 1541년에는 부더가 점령되고 헝가리중앙부를 지배하는 오스만제국 속령으로서 부더주(州)가 설치되어 부더는 오스만 총독의 주류지가 되었다. 한편, 페슈토지구는 그 시기에 대부분 버려진 상태였다. 1526년 이후, 명복 뿐이긴 하였으나 오스트리아대공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헝가리 왕을 겸하게 되었다(헝가리 영토 대부분은 잃었지만). 합스부르크가는 1686녕 왕국령을 탈환하였다. 1686년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왕가에 다시 점령될 때까지 페슈트는 상당히 낙후되었다.

1896년에는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지하철이 개통됐다.

20세기 부다페스트의 인구 성장은 주로 외곽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헝가리의 산업이 수도에 집중되면서 우이페슈트(Újpest) 지역의 인구는 1890년-1910년간 2배 이상 증가했으며 키슈페슈트(Kispest) 인구는 1900년-1920년간 5배 이상 증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인명피해와 1920년 헝가리 왕국이 원래 영토의 반 이상을 잃은 것도 부다페스트의 성장을 일시적으로 밖에 막지 못하였다. 부다페스트는 영토는 작아졌지만 독립한 헝가리의 수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30년 부다페스트의 인구는 백만이었으며 그 외곽 지역에는 40만이 더 살았다.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던 20만 유대인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제2차 세계 대전때인 1944년 나치 독일 점령하에 행해진 대학살에 희생되었다. 곧이어 겨울에는 소련의 포위 공격으로 도시가 심하게 파괴되었다. 그 후 부다페스트는 1950년대1960년대에 재건되면서 헝가리의 공산 정부(1947년-1989년)가 1960년부터 추진한 실용주의 노선의 선전에 어느 정도 이용되기도 하였다. 1980년대 이후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에서 전체적으로 나타난 이민 증가와 자연적 인구 감소로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이다

감자가 가장 맛있었다.


여긴 공항도 뭔가 좀 있어보인다.


국적기는 타야 그 나라에 가볼 수 있다고 할 수 있음. 하지만 두 번 타기는 싫다. -_-;


흠...저게 상호일까? 아니면 택시가 저런 단어일까?


시내에 들어오자 멋진 광경이 펼쳐진다. 도심 한가운데로 아름다운 다뉴브(도나우)강이 흐르는데 국회의사당부터 부다성까지 간접조명으로 한 멋진 야경이다.
프랑스 세느강과 체코 프라하에 이어 유럽의 3대 야경으로 꼽히는 곳인데...간접조명이 아주 멋지다.
한강도 조명색만 바꾸면 이쁠텐데 한강 다리를 무슨 미사리 카페 조명처럼 만들어 놨다.


간접 조명은 다뉴브 강에 반사되면서 2대로 이쁩니다.


호텔 방 자리가 좋다. 창문만 열면 이런 야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차들이 별로 없다.


잠은 비행기에서 충분히 자서 나간다. 아니 사실 별로 잠은 많이 자지 않았는데 그냥 호텔에 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이상하게 이럴 때는 잠이 안온다. 


바로 옆이 강변이라서 바로 나갈 수 있다. 전차 길이 바로 강 옆에 있다.


여기 왜 사람이 아무도 없는걸까?


개도 한마리 안지나다닌다.

 

차도 없음. 나름 수도 중심부인데....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어본다. 여기 어디를 가던지 렌즈를 대면 멋진 사진이 찍힌다.


다시 호텔로....


호텔 안에도 사람이 없다. -_-;


어린이 옷이 이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