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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s : 율 브린너가 나오는 영화는 언제나 마음이 더 간다. 

아마도 어릴 때 봤던 이미지가 강렬했기 때문인 것 같다. 

왕과 나의 기타 등등~

이색지대(웨스트월드), 십계, 황야의 7인 등 그가 등장한 영화는 언제나 흥미진진했다. 

지금은 민머리 배우들이 가끔 있지만, 당시에는 율 브린너가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그가 등장하는 영화는 언제나..주목받았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니...그는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있었다. 

러시아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우리나라에도 살았다고 나온다.

아나스타샤는 러시아의 마지막 공주에 관한 이야기. 잉그리트 버그만이 여주인공으로 나온다. (아나스타샤는 1997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온다)

60년이 지난 영화지만 지금 봐도 배우들은 멋지고, 연기는 훌륭하다.

세월이 흘렀지만.... 잘 만들어진 영화는 지금 봐도 대단하다. 


추천 : ★★★★☆ 

다음 영화 : 9.4 / 10 

네이버 영화 : 7.9 / 10 

imdb : 7.1 / 10 

Rotten Tomatoes : 90% / 77% 

줄거리 :

배경은 1920년대 후반의 프랑스 파리. 제정 러시아 시대의 장군 부닌(율 브리너)은 러시아 혁명 후 국외 추방된 신세. 어느날 그는 자살을 시도하는 여인(잉그리드 버그만)을 구출하는데, 그녀가 공주 아나스타샤를 꼭 닮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공주 아나스타샤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짜르 니콜라스의 딸이다. 혁명 후에 공주의 행방이 묘연했기에 그는 그녀가 공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녀 자신은 기억상실증에 빠졌는지 자신의 신상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자 부닌 장군은 그녀가 가짜라고 해도 아나타스탸 공주로 완벽하게 위장시켜 러시아 왕족이 유럽으로 빼돌린 재산을 가로챌 사기를 계획한다. 즉 아나스타샤의 신용으로 영국 은행에 예치돼 있는 천만 파운드의 돈을 인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부닌 장군의 이 계획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실제 아나스타샤를 잘 아는 왕후 도웨이저(헬렌 헤이스)가 생존해 있다는 것. 왕후의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부닌 장군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그 여자를 아나스타샤보다 더 아나스타샤답게 보이도록 교육시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곧잘 러시아 왕실의 세세한 법도나 디테일한 사항을 기억해내 율 브리너를 당황에 빠뜨린다. 그녀가 진짜 아나스타샤일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깔리고, 이들은 서서히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마침내 이들은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친할머니를 찾아가게 된다.


율 브리너(Yul Brynner) - 위키피디아 

1969년 사라예보에서 율 브리너

본명 율리 보리소비치 브리네르

Юлий Борисович Бринер

출생 1920년 7월 11일

극동 공화국의 기 극동 공화국 블라디보스토크

사망 1985년 10월 10일 (65세)

미국의 기 미국 뉴욕 주 뉴욕

국적 극동 공화국의 기 극동 공화국 → 소련의 기 소련 → 프랑스의 기 프랑스 → 미국의 기 미국

직업 연극배우, 영화배우

활동 기간 1944년 ~ 1980년

종교 동방 정교회[1]

수상 아카데미 최고배우상 (1956, 《왕과 나》)

토니상 외 다수

율 브리너 (영어: Yul Brynner, 1920년 7월 11일 ~ 1985년 10월 10일)는 러시아 태생의 미국의 연극배우이자 영화배우이며, 본명은 율리 보리소비치 브리네르(러시아어: Юлий Борисович Бринер)이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당시에는 극동 공화국의 영토였다.)에서 광산 기사인 아버지와 인텔리겐치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친할머니는 몽골인이었으며, 조상 중에 로마인의 혈통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인 보리스 브리네르는 대한제국으로부터 목재의 채벌권을 얻어 부를 얻었으나, 러시아 혁명으로 몰락하여 광산기사로서 생계를 근근히 유지하였다고 한다. 율리가 3살 때 부모가 이혼하였고, 이후 만주와 조선, 일본을 오가며 살다가, 프랑스에 정착하였고, 1940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당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으므로, 미국 육군에 입대해 심리전 부대에서 대 프랑스 선전 방송을 하였고, 전쟁이 끝나자 배우로 데뷔한다. 그의 가장 유명한 역은 뮤지컬 《왕과 나》에서 맡은 타이의 몽꿋 왕 역으로 이 역으로 생애 4,525번의 연극 공연을 했다. 또한 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왕과 나》에서도 같은 역할을 하여 1956년 아카데미 최고배우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독특한 목소리와 삭발한 머리로 유명한데, 《왕과 나》에서 맡은 역할 때문에 그 머리를 한 이후로 오랫동안 자신의 특징으로 그것을 유지했다. 1985년에 암으로 사망하였으며 가족으로는 아들이 있었다.[2] 그가 폐암으로 사망하기 직전 공익광고에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나는 이제 떠나지만 여러분께 이 말만은 해야겠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마십시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담배만은 피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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