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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Journey/국내여행기

[BP/국내여행기]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댈 순 없지만

by bass007 2013. 9. 30.


BP's : 알고 있던 단어도 그냥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다가 어.....그게 그런 의미였나? 하고 깜짝 놀라는 일이 있다.
최근에는 마호병이 그런 것 중 하나였는데. 어릴 때 보온병이 아니라 마호병이라고 사람들이 불렀다. 그래서 그 마호병이라는 것이 무슨 과학용어인줄 알았지 그게 어떤 뜻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키무라 타쿠야가 나오는 프라이슬리스 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보온병을 만드는 장면을 봤다. 
오랫동안 보온을 해준다고 해서 이름을 마법병 이라는 이름을 쓰는데 발음이 '마호빙~' 이라고 하는게 아닌가. 

잉? 설마 마호병이 일본말이란 건가? 하고 사전을 찾아봤더니 정말로 魔法甁 まほうびん 이었다. 아무래도 벤토나 다마네기 같은 일제침략시대의 잔재인 것 같은데. 
일본 단어도 꽤 아는 편인데  그걸 여지껏 몰랐다니.

뭐 그런 일을 겪은 뒤에 또 한번의 일이 최근에 있었다. 바로 영주 부석사에서 였는데. 책 때문인지 무량수전만 연상해봤지 부석사라는 이름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무량수전 뒤에 가서 -_-; 헉...... 살짝 식스센스의 반전 수준의 느낌이 있었다.
역시 경험 해보고, 가보고, 공부해야할 것 투성이다.

아 태안쪽에도 부석사가 있으니 주의!

추천 : ★★★★★

부석사

부석사(浮石寺)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이 왕명을 받아 세운 화엄종 사찰로서,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1]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번지의 봉황산 중턱에 있다.[2] 좌표: 북위 36° 59′ 56″ 동경 128° 41′ 15″

부석사는 특히 의상이 화엄의 큰 가르침을 베풀던 곳으로, 의상을 "부석존자"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 "부석종"이라 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다.[2]

1372년(공민왕 21)에 주지가 된 원응국사(圓應國師)에 의해 많은 건물들이 다시 세워졌다.[2]

몇 안 되는 고려 시대 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이 유명하다.

http://ko.wikipedia.org/wiki/%EB%B6%80%EC%84%9D%EC%82%AC 

부석사 홈페이지
http://www.pusoksa.org/

위치
https://maps.google.co.kr/maps?q=%EB%B6%80%EC%84%9D%EC%82%AC&ie=UTF8&hq=%EB%B6%80%EC%84%9D%EC%82%AC&radius=15000&t=m&z=16


 


삼국시대 때와 왜적, 몽골이 침략했을 때 영주는 세 나라의 가장 먼 곳, 갈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란에도 큰 피해가 없었다고

몽골군 A "저기 절이 있다는데"
몽골군 B " 거기까지 왜 가냐?"

뭐 이런 형식이었을까?


비가 내려서 올가가는 사람이 없다. 관고아지에서는 날씨와 주변 사람들, 환경등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부석사로..


매표소


군복 입고 올껄


길이 한적하고 좋다.


멀다. 구두가 아닌게 다행..


길가에 사과를 파는 분들이 많으셨다. 사과가 얼마나 싱싱하던지...사과 알러지가 있는 나도 가려움증을 참고 먹을만한 가치가 있었음.


밤에 오면 좀 무서울 듯..  흠...부석사라는 이름이 많으니 앞에 다른 글을 붙이는 구나.... 태백산 부석사..(나는 이 한자를 읽으면서도 뜻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솔길 따라~


비석이랑 석탑 등이 나타나기 시작..


절 앞에 있는 당간지주.. 함께 갔던 종교와 역사에 조예가 깊으신 오팀장님께서 매우 잘 설명해주셨다.

"예전 불교는 부자들, 귀족들에게만 허용됐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여기 당간지주에 걸린 불상그림만 보고 기도를 했어야 했어요.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특권층 뿐이었지요"

종교란 것이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었군..


다른 절들에 비해 개보수가 적게 이뤄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웬지 더 진짜 같아 보인다고나 할까. 위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약간의 비도 어울리는 걸..


이런건 없어도 된다구요...




젊을 때 돌아다니자..아이구 무릎이..-_-;


나무들이 아주 아주 오래됐다.


저게 무량수전인가? 했더니 그 뒤에 있는 것이었다.


부석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한다. 침략이 여기까지 닿지 않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무량수전에 가기 위해서는 이 곳을 통과해야 한다.


무량수전이 보인다.


뒤를 돌아보니 이런 광경이...


무량수전....


이것이 바로 배흘림 기둥.. 많은 하중을 골고루 분산하기 위해서 중간이 유선형으로 튀어나와 있다. 그래서 배흘림...기둥이라고...
흠...앞으로 배 나왔다는 표현보다 배 흘림이라는 표현을 써야지..

'너 요즘 너무 배흘리는 거 아냐?' 
'그러는 너는 배가 다 쏟아진 것 같은데' 

흠.. 뭔가 더 품위 있어 보임. 더 이상한가? 


처마를 지지하는 별도의 기둥..


옆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그리고 그 옆의 돌...


이것이 바로 문제의...돌. 떠있는 돌... 부석이다. 자기부상할 때 그 뜬다는 의미의 부..
떠있는 돌이 있기 때문에 이 절의 이름은 부석사인 것이다.
사실 이 때 살짝 쿵..하고 놀랐다.

아 그래서 부석사구나. 그 부석이 이 돌을 말하는 것이었군....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돌은 의상대사가 절을 만들 때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간단히 내가 이해한 것은

중국으로 유학을 위해 떠단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는 어떤날 해골바가지에 고여있던 물을 마시고 원효대사는 유학을 포기하고 의상대사는 중국으로 간다. 
중국에서 의상대사가 묵던 집에 선묘라는 아가씨가 있었든데 의상대사에게 반한다. 
의상대사는 출가했기 때문에 선묘에게 우리가 결혼은 못하니, 너도 종교인이 되어라 해서 같이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돌아옴. 
제대로 절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돌아다니다가 영주의 현재 부석사 자리에 오는데, 예전부터 풍수지리 장점으로 프리미엄이 붙은 이 곳에는 이미 이교도들 500명이 차지하고 있음. 
의상대사가 가라고 해도 안나가는 중. 선묘가 용으로 변신 -_-; 부석을 들었돠 놨다. 3회를 하니 이교도들이 나갔다고 함.
선묘는 이교도들 오면 또 던지려고 그러는 것인지, 위협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무튼 옆에 돌을 띄워 놓음. 

아무튼 저 돌...진짜로 보면 정말 보는 각도에 따라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짜 신기함.  


이 나무들은 건립했을 때 그대로 하고 한다. 대단한 건물이다.


위로는 산책로가 있다. 의상대사가 수행했던 곳도 있다고 함.


부석사가 바라보는 곳은 신라의 수도인 경주라고 한다. 왕이 부석사를 싫어할까봐. '이 절은 신라의 안위를 위해 지은 절입니다' 라고 경주쪽을 향하라고 했다고 함.


경치가 아주 좋다.


아득하면서 신비로운 느낌


제대로 정취를 느끼고 왔다. 봄에 오면 더 좋을 것 같다.


조심 조심..아이구 무릎이 -_-;


여기서 몇일 지내면 막 건강해질 것 같다.


조용하다. 차가 없다.


누군가의 소원...다 잘 이뤄지기를...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들다 -_-;


사과를 샀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할머니들이 작은 옥수수를 팔기에 2000원어치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1000원짜리, 5만원 짜리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1000원 짜리가 하나 밖에 없으니 두 개만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1000원만 줘. 하면서 2000원 어치를 주셨다.

난 오늘 부석사라는 신기한 절도 보고 So cool 한 할머니에게서 부처님도 보았다.

오늘도 기분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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