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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Journey/해외여행기

[BP/해외여행기/유럽/헝가리] 어부의 요새, 전승기념탑....부다페스트 2

by bass007 2012. 12. 11.



BP's : 지구는 몇 개의 국가로 이뤄졌을까? 갑자기 궁금해서 찾아보니 220~230개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살면서 이 중 몇 개의 나라에 가볼 수 있을까?
매일 1개씩만 가봐도(불가능하겠지만) 220일 이상이 걸릴 것이다. 어릴 때에는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이제는 여름 휴가 때 갈 수 있는 여행티켓만 믿고 살 수 밖에 없는 팍팍한 생활 -_-;

문득 내가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확인해보니 10% 정도 였다. 22개국.
나머지 200여개국을 돌아다녀 볼 수 있을까? 모두 다 가볼 수는 없고, 그래도 고르고 골라서 몇 개국을 가봐야 '이 정도 가봤으니 꽤 괜찮은 인생이었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선 북유럽은 안가봤으니 체크. 반지의 제왕에 나온 뉴질랜드도 가봐야하니 체크, 남미는 브라질 밖에 안가봤으니 삥이 얘기했던 파라과이와 내가 좋아하는 마야 문명이 있는 페루를 가봐야겠다.

아프리카는 인디아나 존스에서 나왔던 알제리와 마다가스카르는 가봐야하고....러시아 대륙횡단 기차도 타고 러시아 문학의 유적들을 찾아봐야지...
북극과 남극도 빙하도 렌즈에 담아야 하고. 자전거 한참 탈때 계획을 세웠던 록키산맥 등반도 하자. 버킷리스트를 보면서 꼭 가리라고 했던 에베레스트까지...

흠 최소한 50개국은 일단 넘어야겠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벽에 붙여놓은 지도만 봐도 부자가 된 느낌이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그동안 너무 잊고 살아왔다.

일단 부다페스트부터...

위키피디아  국가목록
http://ko.wikipedia.org/wiki/%EB%82%98%EB%9D%BC_%EB%AA%A9%EB%A1%9D


헝가리
http://ko.wikipedia.org/wiki/%ED%97%9D%EA%B0%80%EB%A6%AC_%EC%9D%B8%EB%AF%BC_%EA%B3%B5%ED%99%94%EA%B5%AD

소련이 헝가리를 점령(1945년 경)한 이후 소련은 이 나라의 중요한 자산을 점유하고, 내정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가혹한 조치를 취하였다.[1]:51 소련 점령기에 50,000명의 여성이 강간당한 것으로 추산된다.[2][3]:70~71 붉은 군대가 계급의 적을 박해하기 위해 경찰 조직를 세우자 소련은 빈곤에 처한 헝가리 인민들이 다음 선거(1945년 11월)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지지하리라고 예상하였다.[1]:85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겨우 17%의 지지를 얻고 참패하여 소지주당(小地主黨)의 틸디 졸탄 (Tildy Zoltan) 총리를 정점으로 하여 4개정당 연립정권이 구성되었다.(1946년 2월)[4] 그러나 소련이 이에 간섭하여 틸디를 배제하고 중요한 부서에 공산주의자들을 넣은 정부를 세우고, 선거에서 이긴 독립 소농ㆍ농민ㆍ시민의 정당을 금지하는 등 억압적인 조치를 취하였다.[1]:85 공산당은 "살라미 전술"로 반대 세력에게서 작은 양보를 계속 얻어내었다.[5] 헝가리에서 전후 처음으로 다수를 얻어 민주주의 체제를 세울 준비가 된 세력과 싸운[6] 공산주의 지도자 라코시 마티아시살라미 소시지를 자르듯 적을 분열시킨다는 '살라미 전술'이란 말을 만들어내었다.[7] 1945년 소련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원수는 자유 선거로 선출된 헝가리 정부에게 내무부 장관직을 헝가리 공산당의 지명자에게 양보하도록 강요하였다. 공산주의자인 내무 장관 라이크 라슬로 (Rajk László) 는 비밀 경찰 국가 보호국(ÁVH)를 설치하여 협박, 참소, 심문, 고문으로 정적들을 억압하였다.[8]

1947년 초 소련은 라코시가 "계급 투쟁을 더욱 강조하는 노선"에 서도록 압력을 넣었다.[1]:110 1947년 8월의 총선거에서 공산당은 제1당으로 진출하고 이의 지도를 받는 민족독립전선은 60.8%를 차지하였다. 1948년 6월에는 공산당이 사회당과 합병해서 근로자당(勤勞者黨)으로 개칭하고, 1949년 5월의 총선거에서는 99.8%를 얻었으며, 그 해 8월 20일에는 신헌법을 공포하여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발족하였다.[9] 라코시의 권력이 절정에 이르렀던 때에 그는 개인 숭배를 강화하였다.[10]:375~377 "대머리 살인자"란 별명이 있는 라코시는 스탈린식의 정치ㆍ경제 계획을 모방하여, 헝가리는 유럽에서도 매우 잔혹한 독재 정치를 겪게 되었다.[6][11] 그는 "스탈린의 헝가리인 최고 문하생"[10]:375~377과 "스탈린의 가장 뛰어난 학생"[12]:93~94을 자처하였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다른 곳보다 헝가리의 저항 운동이 심해서, 다른 위성 국가들보다 헝가리는 가장 잔혹한 억압 정책을 폈다.[6] 1948년에서 1956년까지 대략 350,000 명의 헝가리 공직자와 지식인들이 숙청되었다.[6] 수천 명이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재판을 받아 강제 수용소에 투옥되거나 동쪽으로 강제 이주되고 또는 처형당하는데, 그 중에는 국가 보호국을 창설한 라이크 라슬로 (Rajk László) 도 있었다.[13]:317[14]

헝가리에서는 처음으로 소비에트 블록 공산주의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반대 운동으로, 헝가리 사람들이 자유, 민주주의, 정치 탄압 종식을 요구한 헝가리 혁명(1956년 10월 23일)이 일어났다. 혁명에 의해 10월 24일 수상으로 임명된 임레 너지는 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바르샤바 조약 기구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자, 소련의 붉은 군대가 헝가리를 침공하여 반공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여 강제로 혁명을 무너뜨리고 독자 노선 추구를 이끈 임레 너지사형시키는 등, 혁명 지도자들을 죽이면서 혁명은 실패하였다. 194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헝가리에서는 집단농장화가 계속되었다.[15]:473 1956년 헝가리 혁명을 진압하고자 소련군이 침공하여(그 와중에 지도자 너지 임레가 처형되었다.) 국가 통제가 더욱 강력해진 지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굴라시 공산주의에서 약간의 억압 조치를 완화하였다. 1956년 10월의 '헝가리 의거'가 있은 뒤에 라코시(1952∼1953년 수상)는 당의 명칭을 사회주의노동자당으로 개칭하고 당의 숙청을 단행했다. 또한 작가연맹(作家聯盟)을 해산시켰으며, 노동자평의회(勞動者評議會)를 금지시켰으며, 1959년부터 61년에 걸쳐서 농업집단화를 완성하였다.[9] 하지만 이후 헝가리는 중앙유럽의 민주화를 주도한다. 카다르 제1서기는 소련의 제22차 당대회 후에 새로운 노선을 채용하고, 1962년 8월에는 라코시·케레 등 스탈린주의자를 일소하였으며, 이듬해 3월에는 의거로 체포되어 있던 정치범들을 모두 석방시켰다.[9] 1980년대 후반이 되자,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함께, 공산당(헝가리사회주의노동자당) 독재의 한계가 드러났다. 1980년대 후반의 헝가리민주화운동의 결과, 1989년 5월, 헝가리는 서방측의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설치되어 있던 철조망 "철의 커튼"을 철거하고 국경을 개방하였다. 1989년 8월에는 헝가리사회주의노동자당이 하야하고, 1989년 10월 23일에는 신헌법(헝가리공화국헌법)의 시행으로, 다당제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국호를 헝가리 공화국으로 변경했다. 이로써 헝가리 인민 공화국은 명실 공히 붕괴하였다. 헝가리는 1980년대바르샤바 조약 폐지도 주도하였다.


다뉴브강은 밤이 더 아름답군....계속 보니 낮도 괜찮다.


물은 생각보다 깨끗....


저 멀리 언덕위에 전승 기념탑이 보인다.


고딕양식의 건축물들이 강과 잘 어울린다. 간판도 돈 받아준다는 현수막도 없다.


서울이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는 것처럼 부다페스트는 강 서쪽과 동쪽으로 나뉜다. 부다페스트라는 이름도 1873년에 도나우 강 서편의 부더(Buda)와 오부더(Óbuda), 동편의 페슈트(Pest)가 합쳐져 만들어졌다고 한다.


앗 새벽에 봤던 전차가 지나간다. 날씬한 전차군....


건축물을 지으려면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대손손 유지보수하며 오랫동안 쓸 수 있고.....사진 찍으면 이쁘게 나오게 좀 해줬으면 한다.


자세 좋은걸....


낮에도 사람이 없다. -_-; 나중에 좀비 영화 찍으면 꼭 부다페스트를 촬영지로 써야겠다.


강위를 떠다니는 유람선....식당 겸....


흠....우리나라로치면 사천왕상 쯤 되는건가?


헝가리 사람들에게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석상일 수도있는데...이쪽 역사적인 인물을 모르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니...좀 더 공부를 해봐야지.


이건...부다페스트의 마스코트는 아니고 사자상...


시골에 잠시 다녀왔다. 소박하지만 예쁜 건물들..


잘 사는 집도 있고 부족한 집도 있었다.


전승기념탑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 시내...여기 전경이 멋지다.


관광객들 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올라와서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남산에 올라오는 그런 기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소련에 이어 2번째 공산국가가 됐던 헝가리는 1989년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이제는 사실상 공산주의가 없어졌거나(북한이 있군) 영향력이 약해졌지만, 어렸을 때 헝가리는 소비에트연방과 동일한 의식속에 있었다.
똘이장군에 나오는 돼지들의 얼굴은 아니지만 여전히 머릿속에는 '공산주의'라는 필터로 보게 됐던 곳....
다른 유럽 국가랑 큰 차이가 없었다.


약간 회색의 도시 같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깔끔하고..사람들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나름 적당한 선에서 친절했다.


이런 곳으로 소풍 오는 것은 똑같은가 보다. 어부의 요새


날씨가 조금만 더 좋았으면...하는 아쉬움이...


어떻게 보면 서울과 꽤 비슷한 구조다.


높이 솟은 첨탑이 독특하게 보인다.


어부의 요새는 19세기 초 도나우강에 살던 어부들이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던 곳이라고 한다. 중앙에 있는 말을 탄 청동상은 헝가리 슈페판 왕으로. 헝가리에 기독교를 들여온 인물이다. 여러가지 업적이 있기 때문에 세종대왕처럼 다른 왕들과는 다른 비중... 


꽤 넓어서 부지런히 걸어다녀야 한다.


다시한번 다뉴브강의 전경을 봐주고...


첨탑들을 살펴본다..


헝가리에서 가장 큰 이슈트반 대성당....내부에는 이렇게 초를 켜고 기도를 하는 곳이 있다.


사람들이 싸우지 말게 해주세요.

성이슈트반 성당.
http://ko.wikipedia.org/wiki/%EC%84%B1_%EC%9D%B4%EC%8A%88%ED%8A%B8%EB%B0%98_%EB%8C%80%EC%84%B1%EB%8B%B9

성 이슈트반 대성당(Szent István-bazilika)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성당이다. 헝가리의 초대 국왕인 성 이슈트반을 기리기 위해 1851~1906년 사이에 세운 성당으로서 부다페스트에 있는 성당 가운데 최대 규모의 성당이며 엥겔스 광장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1]

당시 헝가리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인 요제프 힐드와 미클로시 이블의 공동 설계 작품인 이 대성당은 본래 1848년에 기공식을 가졌으나 연이어 발발한 헝가리 독립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851년부터 재개되었다. 그러나 대성당 선축이 한참이던 1868년에 전례 없는 폭풍이 불어 닥치면서 대성당의 돔이 날아가버렸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야 1905년에 공사는 끝이 났다.[2]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건축 양식으로는 전형적인 네오 로마네스트 양식 건물이다. 전체 구조가 그리스 십자가 형상으로 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 중앙 돔이 있다. 건물 내부에선 86m, 돔 외부의 십자가까지는 96m인데, 마자르족이 이 지역에 자리잡은 896년을 의미한다.[3] 그리고 한 번에 8,5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고 50종류 이상의 대리석이 사용되었다고 한다.[1]

대성당 내부에는 당대의 저명한 헝가리의 예술가인 모르 탄, 베르탈란 세케이, 쥴러 벤추르 등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벤추르의 성화는 성 이슈트반 왕이 헝가리 왕관을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이는 곧 이교도였던 마자르족이 유럽의 일부가 되었음을 내외에 과시한 그림이다. 이 대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돔의 스테인트 글라스로, 카로이 로츠의 작품이다.[3] 더불어 성 이슈트반의 오른쪽 손이 미라로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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